해운대elegy① 해초홈피 '좌동'이란 사진을 보고
김명환2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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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06 13:36
해운대는 몇몇 동네를 빼고는 특별한 동네이름이 없는가 보다.
오른쪽에 있다고 우동
왼쪽에 있다고 좌동
중간에 있다고 중동....
사진은 해운대 백년사에서
해초홈피에 나온 '추억의 사진에 나온 <좌동>도 나의 눈에 익은 사진이다
한창 수영에 비행장 건설을 할 때 자갈이 모자라 우리는 장산에서 발원해서 내려오는 안적사계곡, 절 밑에서 좌동 사이의 골짜기 냇가에서 자갈을 주어모아 생계를 이었든 추억도 있다.
새벽같이 <미포>위에 대동공업이라는 공장지대를 지나면 언덕배기에서 시작되는 좌동이란 표말이 걸린 곳에 당도한다.
그곳에서 부터는 장산의 온 골짜기가 탄약고이다.
팔뚝에 MP라고 완장을 찬 미군들이 경계를 서는 초소를 요리저리 피하면서 지나면 6.25사변후 좌동골짜기는 온통 포탄을 저장해 놓은 무덤같은 탄약고가 있었다.
우리 형님들은 가끔 그 탄약고에 몰래들어가 망치와 정으로 포탄(그 때 부르기는 '초빼이')머리부분에 달린 신쭈(구리)를 돌려빼고 다시 포탄 몸통중간에 달린 넓은 신쭈를 끊어 팔아서 생개를 유지하는 이도 있었다.
대단히 위험한 일이지만 그 때는 겁 없이 그랬었다.
우리는 형님들이 포탄의 장약(그 때는 '씨꽁'이라고 불렀다)을 망을 보아준 댓가로 우리에게 선물했다.
장약은 넓은 종이와 같은 것도 있고 손가락만한 것에 구멍이 숭숭뚫린 것도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언덕배기에 긴 홈을 파고 씨꽁을 넣고 한쪽에서 불을 붙이면,
씨~ ~하면서 땅이 뒤집히면서 타는 재미가 솔솔했다
장난감이 없던시절 재미있는 소일꺼리기도 했었다.
'해운대 에레지' 지금와서는 생각하면 슬픈사연의 가사인데도
그 때는 모르고 많이도 불렀다.
나는 고향을 16살에 떠나오면서 전국을 떠다니면서 이사도 많이 다녔다.
정들고 헤어지면서 생각나는 것이 '해운대에레지'가사가 생각나서 불렀다.
1,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헤여지지 말자고
맹세를하고 다짐을 하던 너와 내가 아니냐
세월이가고 너도 또 가고 나만혼자 외로이
그때 그 시절 그리운 시절 못잊어 내가운다
2, 울던 물새도 어디로 가고 조각달도 흐르고
바다 마저도 잠이 들었나 밤이 깊은 해운대
나는 가련다 떠나가련다 아픔마음 안고서
정든 백사장 정든 동백섬 안녕히 잘 있거라
사진출처:해운대백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