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elegy44 기차에 대한 몇 가지 추억
해운대백년사에서1960년도해운대역앞
기차 통학한 적은 없지만,
우1동 해운대역 건너편 철로주변에 살아서 기차에 대한 몇 가지 추억은 있다.
대여섯살때부터 해운대 우동에 살아서
언제나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까지는 세상과의 경계선이 되기도 한 것이 철길 건널목이었다.
어려선 심한 앞짱구여서 좀 못생겼었던지,
아님 4남매 중의 오빠 아래로 내가 장녀여서인지
항상 부모님이랑 오빠 동생들이 시내로 나들이 갈 때는 늘 집을 지키는 아이가 되었었다.
오빠니까, 밑의 여동생은 예쁘고, 막둥이 남동생은 너무 어려서...?
여하튼 하루는 특단의 결심을 굳히고
엄마 아버지 뒤를 따라 나섰다.
왠걸~ 건널목에 다다를 때까지 그냥 집에 있어라, 들어가라...하시던 아버지께서,
돌연 무시무시한 얼굴과 큰목소리로 "집에 안가나!" 하시는 게 아닌가.
한 번도 아버지한테 그렇게 크게 야단맞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진짜 서럽게 울면서 집으로 되돌아 갔던 기억...
덕분에 엄마한테 아주 이쁜 빗을 선물 받았지만....
그 빗을 정말 애지중지 가지고 놀았다.
빗자루를 톡톡 튕기며 애벌레 놀이도 많이 하고.
기차가 지날 때면 정말 시끄러웠다.
해운대역에서 한참을 떠들썩하게 지껄이다가 꽤액~하고 기적이 울리면서 출발하고 얼마지나지 않아
건널목을 지날 때 또 한번 기차는 고함을 내지르고 울산쪽으로 달려갔다.
시커먼 증기기관차...
디젤 기관차...
해운대의 여름은 정말 왁자지껄했다. 요즘도 마찬가지지만...
해운대역으로 피서 오는 사람들,
기차를 타고 피서 가는 사람들로 정말 볼만했다.
시커먼 기차등 위로도 사람들이 빼곡히 올라앉고
손잡이란 손잡이는 다 붙잡고 매달려 그렇게 기차는 달렸다.
지금은 어디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이간...
그 광경을 보면서 생각했던 것,
그 김밥에 개미가 달라붙은 것 같은 기차가 굴로 들어갈 때 사람들이 우르르 떨어지지나 않을까 걱정했었다.
마치 쌀되박을 싹 깍아내듯이...
해운대역 철로변에 피어난 노란 개나리들을 기억한다.
한 번은 그 노란색에 반해서 누구 먼저랄 것도 없이 친구 몇몇이 복개되지 않은 제법 넓은 하수도를
건너 뛰어 개나리를 꺾으러 갔다가
역무원 아저씨가 고함지르며 잡으러 오시는 바람에,
그 당시 체구가 작았던 나는 그 하수도를 뛰어내려 다시 뛰어올라 건넜었는데
이변이 생겼다.
앞뒤 볼것없이 바쁘니까 부웅하고 날듯이 뛰어넘어 집으로 도망쳤다.
함께 갔던 친구 중에 한 친구가 참 의리도 있고 착했는데 그 친구가 체격도 좋고 평소에 운동도 잘하던 애라
정말 아무 걱정않고 있었는데,
그만 그 친구가 너무 놀랬던지 그 당시에 몸이 말을 안들어서 아저씨한테 붙잡혔었다.
양쪽 뺨을 얼마나 많이 맞았는지 벌겋게 해서 집에 돌아와 엉엉 울던 친구가 아직도 기억난다.
한 동안 그 친구를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다.
비겁하게 혼자 내뺀것 같아서...
그 때는 철로변의 돌들이 석탄들로 새까맣고 여기저기 고철들도 많이 널려 있었다.
아이들은 그걸 주워 간식비로 충당했고
그러다보니 어른이고 아이고 종종 열차에 치여 죽었다.
철로변에 가마니로 시체를 덮어 놓은 날이면 우린 엄마한테 한차례씩 절대로 철길에 가면
안된다는 훈시를 재삼 들어야 했다.
시체의 형상에 대한 상상으로 으시시 몸을 떨면서..
그렇게 세월이 흘러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드디어 맘 놓고 철길 건널목을 건널 수 있게 되었다.
자랑스런 1학년이 되어 건널목을 당당하게 건너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비가 오면 커다란 우산에 폭 파묻혀 바람이 세게 불어 논두렁 아래로 휘이익하고 쳐박히긴 했지만서두... ^ ^;;
이래저래 난, 해운대를 사랑한다.
억구로 좋아한다.
조금 먼 곳으로 나갔다 오면 공기마저 다른 해운대...
해운대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