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elegy⑥ 장산의 탄약고가 터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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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elegy⑥ 장산의 탄약고가 터지다

김명환(22회) 0 3354 0

사진출처:해운대백년사 1960년대 달맞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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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어머니께서는 막노동으로 수영비행장에 나무에 박힌 못 빼러도 가시고 
동백섬 포탄 하역작업하는데 밥 하러도 가시고. 
안적사 골짜기에 자갈채취하러 가시기도 하셨습니다.
원래 고향이 김해 진영이라 아버지께서 일본에서 유학다녀 오시면서 배운 단감재배기술이 발전해서 지금의 진영당감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살던 진영에는 우리집의 감나무밭이 가장 좋은곳에 가장 많이 가지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가끔 나 보다 6살이 위인 누나깨서 하시는 말씀이 "우리집은 일본인이 살던집이라 거실에는 그네도 있고 미끄럼틀도 있었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좌익운동하시는 아버지 땜에 쫏겨나서 해운대에 숨어살적에도 아버지 부하들이 어찌알고 어머니를 찿아오셨다고 했습니다.
그분들이 다녀간뒤에는 돈도 좀 주고  간 것인지 쌀밥에 고기국을  먹곤 했습니다.

한번은 그 아저씨들이 다녀가면서 하시는 말이 "다시는 못 볼 것이다." 하고 간 몇시간뒤 
장산의 그 많은 화약고가 터져버렸습니다.
우리는 하늘을 치솟는 포탄도 보았고, 바다에 떨어지기도 하고 논밭에 비오듯 내리꼿는 포탄도 보았습니다.
해운대 주민 모두는 바닷가로 해서 저 멀리 수영이란 곳에 임시 천막을 친 피난소에 사흘이나 지내다 왔습니다.
그곳에서는 소금물에 손으로 뭉친 주먹밥을 줘서 먹고 지냈습니다.
피난가면서 어떤이는 바닷가에 이불을 버리고 가는사람,
심지어는 어린애도 두고 도망간 사람도 있었을 정도로 위험하고 괭장한 사건이었습니다.

우리 식구도 형님과 나는 제일 먼저 손을 잡고 피난을 갔으며 
누나는 동생을 안고 해수욕장도로에 정차해 있는 차량밑에 숨고 
어머니는 재봉틀을 마루밑에 숨기고 나오니 모두 도망간  식구들 찿느라 그냥 집 주위에 계셨답니다.

어머니께서는 피난후 식구들이 돌아온 자리에서 장산 탄약고를 폭발시킨 사람이 아버지 부하인
김해 진래에 사는 '순태'라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 뒤에 신문을 보고는 우리에게  그 순태라는 사람이 부산으로 가는 버스안에서 잡혀 죽었다고 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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