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elegy43 추억의 놀이터
해운대구백년사에서 1930년도 해운대 철도호텔
어린시절 우리의 단골 놀이터가 몇군데 있었는데
그중 가장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곳을 집어라면 나는 서슴없이 동백장과 온천풀장을 집을 것이다.
동백장의 옛이름이 철도호텔 인걸로 아는데
정확히는 모르겠다.
우리집은 내가 초등학교 5학년때 까지는
온천마을에 살다가
6학년때 시장통 중간지점인 중앙의원 맞은편으로 이사를 갔다.
온천마을에 살때는 춘천교 아래와 동백장 연못 등지에서 놀다가
바로 옆에 새로지은 해운대 최고층 7층 건물인 극동호텔의 신기하기 짝이없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 내리다 꿀밤을 맞기도 하면서 하루종일 엘리베이타만 타는
날씬한 도우미 누나들이 이 세상에서 최고로 부러웠었다.
동백장 연못은 크고 둥근형이며 중앙에 섬이 있었는데
워낙 깊어 여름엔 수영, 겨울엔 썰매,
그리고 봄 가을엔 낚시를 즐기는 우리들 최고의 놀이터 였다.
지금은 해운대 구청이 자리한
온천 풀장의 연못은
상대적으로 규모는 작았으나,
꾸불꾸불 예술적 인데다 가운데
섬으로 이어지는 구름다리와
그안에 곰 한쌍이 살고 있어
참으로 낭만적이며,
사춘기 소년 소녀들의 데이트
장소이기도 했으며,
넓은 공터가 있어 축구, 족구, 찜뽕등 공놀이와
깡통차기, 술레잡기, 다망구, 묵찌빠등 어떤 놀이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데다
시장통, 대천마을, 온천마을, 해운대출장소와 버스종점마을의
중앙지점에 자리 잡고 있어 해운대 아이들의 집합 장소가 되었다.
우리 또래는 주로 28회에서 32회 까지 어울려 놀았으며
대장은 28회나 29회였는데, 그중에서도 깡다구가 세고
겁없는 녀석이 선배들을 제치고 대장 노릇을 한 친구들도 더러 있었다.
그중 기억이 나는 친구가 한명 있는데, 백조세탁소 현석호 (31회)
이친구는 덩치는 작았지만 날쌔고 깡다구가 좋아
우아래로 골목대장 노릇을 했는데, 훗날 성년이 되어서는 예의 바르고
선배들에게 깍듯이 하며 성실한 삶을 사는것을 보면
어릴때 별난 아이들 그리 걱정 안해도 될성 싶다.
또 이곳은 넓은 공터와 해운대의 유일한 극장사이로 개천이 있었는데
훗날 블록담으로 막히기 전에는 여기서 놀다 해질 무렵이 되면
개천을 건너 극장 뒷편으로 기어 들어가 도둑 영화를 보곤 했었는데
한, 두명만 잡히는 희생을 치르면 그외 친구들은 모두가 무사할 수 있었다.
영화를 보기 위한 목적이라기 보다 경계를 몰래 파고드는 쓰릴과 쾌감이
우릴 도둑 고양이로 만든게 아닌가 여겨진다.
또한 온천풀장은 내부공간이 부담없이 개방되어
해운대의 많은 주요 행사들이 여기서 치러 졌는데,
우리 30회의 경우에는 졸업식을 이곳 강당에서 했었다.
무슨 연유에서 였는지는 잘 기억 나지 않지만 2반 출신들은
모두가 졸업앨범을 받지 못해 지금까지 졸업앨범을 본적도 없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때 한여름 날의 일인걸로 기억하는데...
해질무렵 나의 형인 24회 김규열, 26회 최한영 선배가
등과 가슴이 피범벅이 되어 실신한채 리어카로 해동의원과
중앙의원에 실려와 해운대가 발칵 뒤집어진 일이 있었다.
그당시 해운대 창해회라는 단체가 있었는데 중1동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해수욕장 질서유지와 환경정화 라는 명목으로
관리를 했었던 모양인데 젊은 혈기에 조금 과했던 점도 없잖아 있었던지
이에 앙심을 품은 또래의 외지 캠핑족들이 떠나는날
칼부림을 벌이고 도망을 갔다는것이다.
오토바이로 자전거로 그냥 뛰어서, 온 동네 사람들이
수비 삼거리까지 달려가서 다행히 그중 한명을 잡는통에
공범을 다 잡을 수 있었다.
이렇듯 어릴적 우리 해운대는 동네마다
서로 어려울때 내일처럼 나서서 해결하고,
좋은일은 함께 즐거워 하며 어우러져 행복을 키워가는
정과 의리가 넘치는 그런 곳이었다.
*당시 온천풀장과 동백장에서의 사진이 없어
아쉬움이 큽니다.
혹시 이곳에서의 추억의 사진을
소장하고 있는 선후배님들의
자료제공을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