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elegy19, 서면 북성극장으로 진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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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elegy19, 서면 북성극장으로 진출하다

김명환(22회) 0 397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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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도 휴일에 TV보다 가끔 애들한테
"야~ 서부영화는 왜 TV에 안나오노?" 하면 
"아부지 요즘 그런거 보지 않아요" 라고 대답한다.
나는 어릴 때 보고 느끼고 한 영화나 추억이 지금가지 가슴에 와 닿고 있다.

하기사 요즘 영화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왜 그리 감이 오지않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흔들기는 뭐그리 흔드나 춤꾼도 아니고....

사실 나는 아주 어릴 때 부터  창극도 보았고 연극도 보았고 만담도 들었고 서커스도 보았고 영화도 일찍보았다.
내가 살던 그 때 시장통에서 온천장으로 조금가면 참기름 짜는 집 쯤에서 왼쪽으로 좀 넓은 공터가 있었다.
그 부근에 무덕관이라는 체육관도 하나 있고  그 옆의 넓은 공터에 가끔 영화가 들어온다.
영화하는 날에는 점심 때 부터 트럭에 포스타 부치고 나팔불고 선전하면 우리는 기대에 부픈다.
일찍 저녁을 먹고 그곳에 가면 
흰천으로 포장을 빙 둘러치고 영사기를 갖다놓고 자막을 설치하고 출입구에 줄을 치고 덩치크고 험상궂은 아저씨 두명이 출입구에서 검표를 한다.
몇몇 이름있는 동네어른들이 그냥 들어가고  또 아가씨들도 몇명쯤은 서로 아는사이인지 그냥 공짜로 들어간다.
우리는 운이 좋으면 천 포장을 뒬치고 들어가지만 그렇지 못하는 날에는 기다리다가 
영화가 절반이 지나면 그 때는 아무나 공짜로 들어간다. 검표하는 아저씨도 없다.
그동안 기다리면서 변사아저씨의 말만듣다가 실제 화면을 보면서 변사의 목소리를 듣고나면 더 재미가 있었다.

그 때 국산무성영화와는  별도로 해운대 해수욕장 중간쯤에 가면 철조망이 빙 둘러쳐진곳에 <비치클럽>이라고 하는데는 주말마다 영화를 하는데 컬러영화를 했다.
처음에는 그곳에 얼씬도 못했지만 미군들이 주둔하니 마을에서는 미군을 상대하는 양갈보들이 생겨서 
마을 어른들이 찿아가서 항의도 하고 해서 
그 때 부터 각 가정에 선물표를 돌려줘서 타올이며 추잉껌 아이노꾸(구슬) 오무짱(인형)도 선물받고 서부영화 해적선 영화도 많이 보았다.
그 때 본 영화제목은 <최후의 포장마차>
인디언 영화 보물섬과 같은 영화다운 영화를 일찍이나 보았다.

그 뒤에는 높은 군인들이 휴양소를 만들어 <군인구락부>라는 간판을 붙이고 군인가족들의 출입을 허용했는데 
나는 그들의 틈에 꼽사리끼어 가끔 영화를 보았다.

그렇게 나의 영화보기가 발전하다가 이제는 규모도 크게 아예 버스정류장옆 서커스를 하던 장소에 무대가 설치되고 
그곳에서 창극과 만담을 하고 나면 어김없이 국산영화를 했다.물론 무성영화다.
나이도 어린 내가 무성영화를 보고 울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영화제목은 <그대는 돌아왔건만>이란 영화인데 전쟁통에 헤어진 부부와 자식들의  헤어진 슬픔을 다룬 영화인데 
그 여주인공인 아주머니가 마지막 남편과 자식을 만나고 죽는 슬픈영화인데 
천방지축으로 살던 때지만 감정은 풍부한 것 같았다.

서커스도 가끔 들어왔다. 출입구에 원숭이 한마리는 언제나 달골로 재롱을 부린다.
서커스를 보기위해 천막을 들치고 공짜로 들어가는데도 요령이 있어야 했다.
재빨리 밖에서 두 다리부터 천막속으로 넣어야 한다.
그러다가 들키면 "아저씨 여기 나가는 길이 아닌가요"라고 능청을 떨면 
"야~ 임마  출입구는 저쪽이야 "라고 하면 안도의 숨을 쉬지만 
아저씨가 달려오는 날에는 바로 도망을 쳐야 한다.

그 당시 만담과 창극도 많이 들어와서 가설무대에서 했다.
만담에는 그당시 "소팔러가다가 낳았다"는 장.소.팔. 아저씨와 고춘자 아주머니의 찐하게 화장한 것도 생각난다.
단골 연극 주제메뉴는 당연히 이수일과 심순애다.
심순애가 이수일의 바지를 잡고 " 수일씨~!" 하고 애원하면 
"놓아라" 하고 침을 탁 벹으면 그 다음 대사에 관객모두 박창대소한다.
심순애가 하는 말이 "수일씨~ 미우면 침을 뱉지  왜 가래침을 뱉습니까? 흑흑"....

그러다가 아예 해운대에도 극장이 생겼다. 
우리는 공짜로 영화를 보기 위해 변소창문도 많이 부셨고 극장 뒷집으로 해서 간판실로 튀다가 페인트통도 많이도 넘어 트렸다.
그러면 극장주인은 쇠창살로 단단히 막아 놓았다.
우리는 최후로 변소밑바닥을 통해서 들어가기도 했는데 처음개설한 극장에는 똥을 많이 보지않아 깨끗한 공간이 많았다
그곳도 남자변소밑 똥통속으로 들어가면 그래도 괜찮았는데 
여자변소 밑바닥으로 들어가면 그곳에는 똥도 제법있고 여자는 소변도 함께 보는지라 시멘트 바닥이 질퍽질퍽하여 그곳을 통과한 날에는 극장속 의자에 앉아도 냄새 때문에  옆 사람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때론 여자변소에 사람이 있어 대변이라도 누는 날에는 그 밑에서 똥떨어지는 것을 구경(?)하며 기다려야 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제법자라서 영화보기는 이제 해운대지역을 벗어나 부산이라는 대 도시로 진출하여 그것도 마음에 맞는 것 골라가면서 많이도 보았다.
서면노타리에 있는 북성극장은 규모가 아주작지만 그곳에는 항시 서부영화를 단골로 해서 많이 보았다.
극장비를 마련할려고  나쁜짓도 많이했다. 이 일 만큼은 지금도 숨기고 싶다.
커나는 애들이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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