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elegy21 부둥켜 안고 한없이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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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elegy21 부둥켜 안고 한없이 울었습니다.

김명환(22회) 0 399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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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나는 중학교는 가정 형편상 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머님께서 아는 아저씨에게 말해서 "시계수리하는 집에서 근무하면서 기술이나 배워라" 했지만 
해운대에서는 앉아 있기가 싫어서 무작정 부산으로 가출을 시도 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도착한 집이 부산 대청동의 번화가에 있는 보신탕집 심부름꾼으로 3개월살았습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어른들의 말씀을 실감한 기간이였습니다.
그 때 보신탕 끓이는 법도 배웠고 '함흥식'이니 '평양식'이니 그런 것도 그 때 알았습니다.
기간은 아주 짧지만 내 목구멍하나 살라고 그리했습니다.
숙소가 식당 주방위에 합판으로 다락같이 만들어 문도없는 방이였는데 밤새도록 보신탕국물 울겨내는 냄새 때문에 잠도 못자고 그랬습니다.
한번은 식당에서 빈그릇치우다 넘어져 손님의 옷을 버리고 당황하고있는 어린나에게 주인 아주머니는 그 억센 손바닥으로 개패듯 내 빰을 후려쳤습니다.
그래도 나는 옛날 못된성질을 죽이고 참아야 했습니다.
나는 너무 아프고 슬퍼 밖에나가 프라다나스 가로수를 기대고  멍하니 서  있는데  
마침 길 건너에서 형님이 이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어찌알고 나를 찿아오셨는지 
나도 한참은 쪽팔려 멍하니 쳐다보면서 형님 아니기를 바랐지만 보면 볼 수록 형님의 얼굴이 역력했습니다.
그래서 곧장 달려가서 둘이서 부둥켜 안고 한없이 울었습니다.
형님도 가출해서 부산 서면이란 곳에서 새벽과 저녁에 신문돌리는 아르바이트생활로 '동성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동성고등학교는 똥통학교라고 했습니다  최두고씨가  교장인데 
그래도 고등학교는 그학교 출신 김득봉씨가 복씽으로 해서  잘 나가던 학교였지만 동성중학교는 좋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곳 보신탕집에 몇달 일 했지만 돈은 하나도 못 받았습니다.
나는 이렇게 빰을 맞은 후로 해운대로 돌아가기로 마음 먹었으나 해운대를  갈려도 차비가 없어서 가지를 못하다가 
하루는 식당 아주머니께서 앞치마를 밖에서 털고 오라해서 앞치마를 가지고 나가 길에 터는데 
지페 한장이 꼬불쳐 떨어지는 것을 줒어  펴보니 그 당시 고액권이였습니다.
그래서 그길로 앞치마를 길에 버리고 멀고먼 형님께서 알려준 주소대로 형님을 찿아갔습니다.
형님을 만나니 처음으로 배고프다고 길에서 직접 꿉는 '카스테라' 라고 빵을 하나 사주는데 
맛도 있지만 하도 크서 배고픈 나도 다 먹지를 못할 정도로 큼직했습니다.
냉면도 그 때 처음 먹어보았습니다. 
냉면의 면발이 너무 질겨서 먹지를 못하고 있는데 형님께서 
"그냥 넘겨도 뱃속에서 소화가 잘 되는기라" 그래서 그 뒤론 꿀뚝 꿀뚝 샛바람에 개눈감추듯이 먹다보니 형님보다 내가 먼저 먹어 버렸습니다.
다음날 형님은 나에게 껌을 사서 팔면 남는다고 껌장사를 하라 하였지만 하지않고 
형님께서 주선해 준 동성중학교에 들어가서  3개월 공부하고 그만두었지요 
그 도 돈 때문이였습니다.
형님은 나에게 다시 "껌을  팔면 많이 남는다하드라"라고 권했지만 
나의 성품은 죽으면 죽었지 남에게 구걸한다든지 챙피떠는 것이 싫었습니다.
해운대 집에 욌습니다. 그 때도 집은 이층집이였지만 무슨 일로 "곧 집이 남의 손에 넘어간다"라 했고 
누님도 무슨 일인지 방에 누워 밖에 나가지를 않고 계셨습니다.
누님께서 방에 누워 있다가 내가 왔다는 소리를 듣고 나와 반기며 "잘왔다."그 한마디만 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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