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elegy25 미포'고두베이'관한추억
동해남부선을 따라 미포에서 청사포로 넘어가는 길이 그때는
철길밖에 없어서 사람들은 터널(달맞이재)을 가기 전에 아름드리 큰 소나무가 있어서 거기서 쉬어가곤하였는데
나무주인과 철도청간의 알력으로 주인된 이가 중간 껍질을 벗겨 소나무를 죽이는 바람에 지금은 볼 수가 없게 되었다(68년인가 69년) 그 철뚝길을 따라 해맞이 /달맞이 하는 인파가 해수욕장에서 달맞이재를 훨씬 지나서까지 늘어선 모습이 선하다.
아이들은 어김없이 쥐불놀이 한다고 깡통을 돌리다가 불을 내어 소란을 피우던 일 ..
유독 연인들이 철길에서 자살을 많이 하던 곳이기도 하다..
또한 군부대가 위치한 능선은 미포친구들의 단골로 나무하는 곳이었다.
유독 지금은 유명을 달리한 흥도(28회)형이 나무하는데는 일등이었는데..
다하고 나서는 내 가마니에 주섬주섬 나무가지랑 솔방울을 주워넣어주던 다정한 형이었는데
너무 빨리 가버렸다. 그러던 중에도 차도라는 친구는 곡 생소나무를 짤라놓고는 지혼자 노닥거리고 자다가는
빨간모자 산감수(산지기) 호각소리에 혼비백산하여 철길따라 뛰어가던 모습이 떠오른다. 간간이 골프공도 줍곤하였다.
그 아래 바위들이 늘어져 풍광을 자아내는 고두배기에서는 소나무를 잘라 만든 칼을 한자루씩 들고
지금은 찾을 수 없는 동굴 속을 누비며 전쟁놀이를 하던 곳이다. 더우면 자맥질도 하면서 ...
또한 그곳은 미포주민들이 지역을 3등분하여 자연산 미역을 키우고 생산하였다.
때가 되면 우르르 몰려가서 돌에다가 쇠갈퀴(?)를 쓸어서 미역이 바위에 잘 붙도록 하는 작업을 하곤 하였다.
그리곤 때가 되면 해녀랑 잠수부를 투입하여 미포 선창가로 가져와서 부리면
아이들은 못으로 철길에 놓아 만든 칼로(그때는 칼도 귀했다) 미역귀를 짤라서는 바위틈에
조별로 모은 후에 어른들이 다가고 난 후 개인별로 나누어서는 집으로 가져와 저녁반찬으로
맛있게 먹기도 하였다. 지금도 나는 미역귀만 있으면 밥 한그릇은 뚝딱이다..ㅎㅎ.........
그런데 지금은 낚시꾼이 어질러놓은 미끼와
오물들이 바위구석구석을 더럽히고 있다.
허허참